주류경제학의 이론적 한계, 베이비시터 조합 관련된 사고실험
유명한 경제학 주제로 베이비시터 조합이 있습니다. 변호사 부부로 이루어진 이 조합은 아기를 한번 맡을 때 쿠폰을 지급받고, 나중에 쿠폰을 주고 아기를 맡길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이 조합은 처음에는 성공적이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모두가 언제 할 지 모르는 외출을 대비해서 여유 쿠폰을 가지고 있으려고만 하고 아기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두가 외출을 할 수 없었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 주에 두번씩 아기를 맡기는 것을 의무화하자 아기를 맡는 일도 많아지고 아기를 맡기고 외출하는 일도 많아졌습니다. 나중에는 인플레이션의 조짐까지 보였다고 하죠.

이 일화는 화폐와 거래간의 지나치기 쉽지만 지나칠 수 없는 관계를 보여줍니다. 화폐가 없으면, 거래도 없다는 거죠. 아무리 재화가 있더라도 화폐 보유자에게 화폐를 주고 매각하지 않으면 다른 재화를 구매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주류경제학은 항상 무한한 수요/공급능력을 가정합니다. 그렇지만 어느 것도 실제로 무한하지는 않습니다. 전체 경제규모에 비해 너무나 작아 무시할 수 있는 개인을 가정한 이론이기 때문에 그렇게 가정한 것이지, 실제로는 공급도 유한하고 수요도 유한하죠. 화폐 공급량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주류경제학은 항상 개인이 화폐를 충분히 보유하고 있다고 가정합니다. 하지만 이는 지나치게 현실과 먼 가정이죠.

만일 베이비시터 조합의 쿠폰양이 제한되어 있으며, 쿠폰의 절반 이상을 특정한 개인이 보유하고 있고, 각 개인이 보유하고 있는 쿠폰양은 개인이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 적립해 놓고자 하는 양보다 작다면 어찌 될까요? 개인은 쿠폰을 보유하려고만 하고 아이를 맡기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거래는 위축되고 고통스럽습니다. 이 때 절반 이상을 보유한 특정한 개인은 쿠폰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을 수 있겠죠. 개인이 보유한 쿠폰이 필요양에 미치지 못할수록, 신규 쿠폰이 발행되지 않을수록 이자는 올라갈 수 있습니다. 대부가 없을 때보다는 거래가 활성화될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쿠폰을 빨아들여서 거래가 더욱 위축되고 쿠폰대부에 의존하게 되는 부작용이 발생하게 되죠. 따라서 화폐 발행이 제한된다면 화폐 소유자의 횡포가 기승을 부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제한된 재화에 따른 이익이라고 하여 화폐지대로 이름붙일 수 있을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20세기 이전은 금본위제의 시기였으며 중상주의와 맑스주의가 등장했지요. 중상주의는 중금주의라고 하는데 수출을 많이 하고 금을 비축하려는 정책을 말합니다. 아담 스미스는 금은 국부가 아니라고 비판하고 생산물이 국부라고 하였으나, 실제로는 금이 부족하면 화폐도 부족하고 거래가 일어나지 않아 국부가 증진되지 않습니다. 또한 금이 부족한 나라에 금을 빌려주고 이자도 받을 수 있죠. 금은 채굴할 수는 있으나 원하는 대로 채굴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20세기 이후 케인즈의 등장으로 금본위제가 폐기되어 인류는 디플레이션과 인플레이션, 고리대금의 굴레에서 좀 더 자유로워질 수 있었습니다. 또한 수출/수입 분쟁에도 금본위제보다 효과적이었죠. 누군가 화폐를 축적하려는 시도를 한다면 화폐가 시장에서 사라지기에 인플레 걱정 없이 화폐를 발행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적자가 누적되면 문제가 발생하지만 바로 화폐가 시장에서 사라져서 거래를 위축시키는 금 유출보다는 나은 것이죠.
by teferi | 2009/10/29 02:00 | 경제 | 트랙백 | 덧글(2)
그라민 은행에서 배우는 현 사회를 개선하는 방법
효과적인 사회 개선 방법으로 그라민 은행의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물론 그라민 은행처럼 소액대부를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라민 은행은 처음에는 조그많게 시작했으나 나중에는 엄청난 규모로 성장했습니다. 어째서 그렇게 되었을까요? 처음 시작할 때부터 지속가능성과 보편성을 고려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처음에 조그많게 시작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만일 크게 시작했다면 크게 주저앉았을 때 일어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라민 은행의 교훈을 바탕으로 사회를 개선하는 데 쓸 수 있는 방법론을 도출할 수 있습니다.

첫번째는 현실에서 출발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제로베이스에서 이상적인 사회를 설계한 다음에 그 사회를 만들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공산주의자가 그랬습니다. 그러나 그 사회가 실제로 도달하자 기존의 현실에서 발생하지 않았던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왜냐, 현실에서는 해결된 문제가 제로베이스에서 설계하면서 설계자가 고려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상적인 사회는 목표로서 가능할 지 몰라도 이를 그대로 현실로 만든다는 것은 위험면에서나 지식면에서나 옳지 않은 것입니다. 사회 전체를 뜯어고쳤을 때 어떤 문제가 일어날 지 모르며 그런 문제를 다룰 수 있는 지식은 실제로 운용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갖춰져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사회 전체를 뜯어고치는 것은 올바른 방법이 아닙니다. 현실에서 아직 고쳐지지 않은 문제를 하나하나 푸는 것이 진정한 개선의 출발점이 되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작게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작다고 결코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작은 일이라도 얼마든지 크게 키워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모두가 비슷한 욕망을 가지고 있기에 한 사람의 욕망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의 욕망도 충족되지 않을 수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작게 시작하는 것은 감당할 수 있는 일을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처음 시작할 때는 지식이 부족하기에 실패할 수 있습니다. 실패했을 때 손해를 감당할 수 있는 규모로 출발해야지 실패하더라도 그동안 축적된 지식을 가지고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작은 규모로 해서 성공한다면 자신이 지식을 가지고 있음을 현실에서 증명한 것이고 좀 더 큰 위험을 지고 규모를 더 키울 수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큰 규모의 일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는 작은 일에서 발생한 문제에 대한 해결방법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세번째는 지속가능성을 고려한다는 것입니다.
일을 시작할 때 일회성인가, 지속가능한가는 엄밀하게 검토하여 지속가능한 방법을 개발해야 합니다. 특정인의 일방적인 희생이 필요하다면 일반적으로 지속가능하지 않습니다. 예를 든다면 기부에 의존하는 비영리법인 모델입니다. 기부금을 내는 것으로 인해 어는 것이 거의 없기 때문에 기부금을 계속 낼 수 있는 유인이 없고, 사업을 성공적으로 진행하더라도 기부금이 늘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관련 당사자들을 전부 만족시킬 수 있다면 지속가능합니다. 그라민 은행과 같은 영리법인은 투자자에게 이익을 분배하고 고객에게는 타 대부업체보다 저렴한 이자율의 대부를 제공하며 직원에게는 월급을 제공하여 관련 당사자에게 만족을 제공할 수 있는 모델입니다. 사업이 성공적으로 진행되어 고객을 늘인다면 이윤이 늘어날 것이며 투자금 유치도 쉽게 할 수 있고 직원도 많이 채용할 수 있으며 고객 역시 자신의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by teferi | 2009/10/28 15:19 | 정치 | 트랙백 | 덧글(4)
좌파 정치경제이론을 지지하는 것은 죄악입니다.

좌파 정치경제이론이라 함은 일반적으로 맑스의 이론에 기반하고 노동과 노동자를 중시하고 자본주의에 반대하며 기성 체제에 저항하는 것 등을 포괄하고 있는 이론을 말합니다. 좌파와 우파이론이 동등한 가치가 있고 동등한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사람도 있으며, 좌우의 날개로 비유하며 한쪽이 없어져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좌파 정치경제이론은 결코 우파의 이론과 동등한 가치를 가지지 않습니다. 좌파이론을 지지하는 것은 곧 그가 속해있는 공동체에 대한 죄이며 전 인류에 대한 죄이기도 합니다.

어째서 그럴까요? 그 이유는 바로 좌파이론은 과학적 사고방식에 근거하지 않고 음모론과 권위주의에 근거하였기 때문입니다.

음모론의 정의를 위키백과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음모론(陰謀論)이란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킨 사건의 원인을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할 때, 배후에 거대한 권력조직이나 비밀스런 단체가 있다고 해석하는 것을 말한다. 이 음모론의 정의는 바로 좌파이론의 전개방식과 정확히 들어맞습니다. 그람시의 헤게모니이론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노동자가 혁명을 일으키지 않는 이유를 배후의 거대한 지배계급의 문화 헤게모니때문이라고 해석하는 것입니다.

좌파이론은 현실의 부조리를 음모론으로 설명합니다. 빈부격차가 발생하는 원인은 부르조아 계급의 기득권 때문이다. 노동자가 자본가보다 더 못사는 이유는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하기 때문이다. 실업자가 발생하는 이유는 산업예비군을 만들어 노동자를 더 잘 착취하기 위한 것이다. 이렇게 부조리한 현 체제가 유지되는 원인은 현 체제를 유지하는 요소 - 정부, 제도, 문화, 철학, 각종 사회이론 등 -가 부르조아 계급의 이익을 위해 복무하고 있기 때문이며, 따라서 궁극적으로는 혁명으로 현 체제를 타도해야 한다는 것이 좌파이론의 주된 내용입니다. 즉 현재 사회에서 발생하는 문제점은 전부 악한 누군가의 책임이고, 현 사회가 유지되고 있는 이유도 악한 누군가를 위한 거대한 음모의 일환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좌파는 권위적입니다. 이는 이론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현실을 관찰하여 이론을 검증하는 과학적 사고방식과 대비되는 것으로, 권위있는 누군가가 한 말을 그대로 믿고 따른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맑스입니다. 맑스의 이론이 현실을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는지에 대한 비판적인 자세를 가지고 있는 좌파는 있을 수 없습니다. 만일 비판적인 자세를 가진다면 예의 음모론이 힘을 발휘합니다. 즉 맑스이론에 대한 비판은 부르조아의 착취를 숨기려는 부르조아의 모함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좌파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아니하고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됩니다. 즉 현재의 문제점만 보고, 그 문제점이 부르조아 때문이라는 결론을 미리 내려놓은 뒤에 그 결론을 잘 설명하는 것 같은 이론을 취사선택합니다. 그리고 공산주의자의 입맛에 맞는 이론이 선택되면 그 이론은 현실의 관찰로 검증하지 않고 무조건 참으로 믿고 권위를 부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좌파는 러시아 혁명과 뒤이은 스탈린의 숙청, 중국 혁명후 마오쩌둥의 숙청, 베트남의 적화통일후 숙청, 공산주의사회에서 한결같이 일어나는 독재와 빈곤은 무시하거나 도마뱀꼬리를 짜릅니다. 즉 진정한 맑스주의자가 아닌 사람이 집권해서 비극이 일어났고, 맑스주의에는 잘못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의 음모론을 설파합니다. 즉 부르조아가 공산주의를 폄하하기 위해 침소봉대한다거나, 스탈린과 마오쩌둥에 반대한 공산주의자가 있었음에도 부르조아의 공작으로 밝혀지지 않았다거나 등등.

이론은 옳은데 현실에 맞지 않는다거나,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날아야 한다거나 하는 식의 말은 좌파이론에 결코 맞지 않는 것입니다. 좌파 이론은 다른 게 아니라 틀린 것입니다. 음모론에 휩싸여 비판적 검토를 할 수 없는 이론은 이미 죽은 것입니다. 따라서 이론이 틀려서 현실에 맞지 않는 것이고, 국가는 좌우 스펙트럼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틀린 이론을 퇴출시키고 올바른 이론이 힘을 발휘할 수 있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by teferi | 2009/10/28 14:33 | 정치 | 트랙백(5) | 핑백(2) | 덧글(199)
도덕은 새로운 의미에서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고보니 단멸교의 주된 이념을 소개하지 않았군요.

글을 잘 보고 있습니다. 다만 도덕부정론에 대해서는 이견을 좀 가지고 있습니다.
분명 하늘이 내린 도덕이라는 것은 있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사람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에서 도덕이 발생할 수 밖에 없었으며, 이어져 오지 않았을까요.

사람은 미래와 무한을 가정할 수 있습니다. 살인하거나 강간하거나 도둑질하거나 하는 일이 반복될 때 어떤 결과를 가져올 지 예상할 수 있습니다. 살인하는 것이 용납된다면 서로 살인해서 살인을 잘하거나 잘 막을 수 있는 사람만 남을 것이며, 강간하는 것이 용납된다면 장기적인 남녀관계와 아이의 양육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고, 도둑질하는 것이 용납된다면 성실하게 자신의 노력으로 살려고 하지 않고 도둑질하거나 도둑질당하지 않는 것에만 신경을 집중할 것입니다. 따라서 이와 같은 행동을 하는 사람을 여러 사람이 뭉쳐서 벌을 준 것입니다. 그러나 크나큰 자선과 보시를 베푸는 것을 계속한다면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이 곤경에서 벗어나는 등 일반적으로는 다른 사람에게 이롭기 때문에 여러 사람이 뭉쳐서 권장한 것이겠지요. 또한 서로서로를 약탈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서로서로를 약탈하며 살아가지 않는 집단에게 삶의 터전을 빼앗기기도 했을 것입니다. 즉 도덕은 인간사회가 유지되기 위해 필요했던 것입니다. 다만, 오래된 도덕은 지금과 맞지 않는 규정이 많아서 고쳐질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오히려 지금 필요한 것은 도덕부정론보다 욕망긍정론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욕망 그 자체는 어떤 일이 있어도 실현되어야 하는 일이며, 그런 욕망을 추구하는 과정이 반복될 때에도 다른 사람의 욕망 실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올바른 방법은 도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일 자신의 욕망이 다른 사람의 욕망과 충돌함에도 이를 해소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욕망실현은 다른 사람에 의해 방해를 받게 될 것입니다. 이런 행동은 그저 어리석은 일일 뿐입니다. 다른 사람의 욕망과 충돌하지 않고 욕망을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는데 열등한 방법을 택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는 방법은 오직 하나, 다른 사람의 욕망을 실현하는데 도움을 주고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전자와 동일인일 필요는 없음- 도움을 자신이 준 도움에 근거하여 구하는 것입니다.

by teferi | 2009/10/18 22:52 | 잡생각 | 트랙백 | 덧글(6)
결혼이후 합가(合家)의 문제점과 대안
요즘의 여성들은 시부모와 같이 사는 것을 정말 싫어하고 있습니다. 여성관련 게시판에 보면 합가를 지옥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원인은 무엇일까요? 같이 사는,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공존 공영할 수 있는 올바른 규칙이 정립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도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옛 유교적 규칙은 이렇습니다. 가정의 위계관계에서 상위에 있는 사람은 하위에 있는 사람에게 어떤 것이든 지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

이제 유교적 규칙은 21세기 대한민국에는 결코 맞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유교적 규칙이 사람들의 의식 속에는 남아 있으며, 유교적 규칙이 일반적인 사회의 여론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것이 현대의 가족관계와 충돌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피해가 가장 극명한 것이 여성인 것이죠.

그러면 어떤 규칙이 필요한 것일까요? 자유롭고 이기적이며 평등한 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타인과 호혜 협력한다는 민주주의적, 자본주의적 인간관에 근거한 규칙이 필요합니다. 며느리는 결코 시아버지의 아랫사람이 아니며, 시아버지는 결코 며느리의 윗사람이 아닙니다.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구요? '아무리 그래도 며느리가 시아버지에게..'라는 생각을 한번이라도 한 적이 있다면 당신의 머리속은 아직도 유교적 위계관계가 들어차 있는 것입니다.

가족은 혈연과 부부관계로 이어진 집단이지만 자신의 이기적인 욕구-자신은 별로 가사일 안하고 같이 살고 있는 타인의 대접을 받으며 그 타인과 평화롭게 살고 싶다-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결코 장기적으로 존속할 수 없습니다. 그 욕구는 남자이든 여자이든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해관계의 충돌이 발생하게 됩니다. 단기적으로 보면 내가 가사일을 덜하면 타인이 가사일을 더해서 자신이 더 대접받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국 가사일을 누가 할 것이냐로 첨예하게 다투게 되며, 현재 그 갈등의 해결은 현실에 맞지 않는 유교적 규칙을 어거지로 적용하여 해결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네가 며느리니까, 네가 내 아내이니까, 네가 아랫사람이니까, 네가 일해라.' 남편과 시부모가 주는 메시지의 핵심입니다. 분가시에는 그래도 덜하지만 합가시 문제점이 심각해지는 것은 남편과 아내는 이제 동등하다는 것이 어느정도 인정받고 있으나 시부모와 며느리가 동등하다는 것은 잘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며, 1인 1표제라고 할지라도 아내의 권한은 분가시의 50%보다 더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결국 아내는 이혼하거나, 참고 살거나 둘 중의 하나를 택해야 하는 지경에 몰리게 되죠.

그러나 이런 방식으로는 결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이 문제는 단기적으로는 이해상충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이해의 일치를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냐구요? 서로의 욕구를 솔직히 인정하며, 서로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수준이 되기까지 공정을 개선하거나, 다른 사람을 고용하면 풀릴 수 있습니다. 시부모나 남편은 며느리, 아내에게 일시켜서 편하게 살려는 이기적인 인간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시부모는 유교적 윤리관, 즉 자신은 윗사람 입장에서 나름대로 아랫사람을 배려하고 있다고 자신을 변호할 지 모르나, 본인의 자의적 배려와 타인의 객관적 만족은 결코 쉽게 일치하지 않습니다. 배려는 며느리가 만족할 때까지 해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관계는 다른 쪽에도 적용됩니다. 며느리 역시 같이 사는 사람이 만족할 때까지 배려할 의무가 있습니다. 결국 가족 구성원 전원이 만족할 때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지, 소수라고 할지라도 불만족하는 사람이 있으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은 가족을 떠난다는 결정을 내리는 것으로 대응하기 때문입니다. 공정 개선은 청소는 며칠에 한번 해야 하는가, 어느정도까지 해야 하는가, 음식은 누가 하고 어느 정도의 맛을 가져야 하며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타인이 자신을 만족시키는 만큼 자신은 어떻게 가족에 기여할 것인가, 등등 다수가 머리를 짜내면 일하는 시간을 절감할 수 있는 방법이 반드시 나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지금 가사공정개선은 연구조차 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합니다. 그리고 아예 통크게 돈을 더 많이 벌어서 가정부를 고용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방법이 기존의 유교적 규칙의 강제적 적용보다 더 힘들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기적 인간을 인정하지 않으면 반드시 탈이 나게 되어 있습니다. 가족 내에 불행한 사람이 있으면 그 불행은 전염됩니다. 또한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이 가족을 떠나게 하는 유인을 제공합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이기적 인간관에 기초한 규칙은 유교적 규칙보다 우월합니다.

(*)유교적 입장에서 반론을 제기할 사람들을 위한 부연설명
by teferi | 2009/10/09 16:37 | 잡생각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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