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리주의는 틀렸으며, 국익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공리주의를 상징하는 말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함은 존재하지 않는 허상입니다. 왜냐하면, 어떤 것이 행복인가, 아닌가를 결정하는 데에 이미 주관적인 편의성(bias)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윤리의 원리로 삼고 행동한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러면 그는 자신의 행복뿐만이 아닌 타인의 행복을 주는 행동을 , 나아가서는 자신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그 희생이 최대 다수에게 행복을 준다면 그러한 행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자신이 의도한 행동이 타인에게 행복을 주는지 아닌지를 누가 측정할까요? 그런 측정은 결국 행동의 대상이 되는 사람 본인이 해야 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공리주의에 따라서 행동한다면 그런 측정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게 될 것이며, 공허한 최대 다수의 행복만이 있을 것입니다. 모두가 그렇게 믿고 행동했지만 그 누구에게도 행복을 가져다 주지 못하는 것 말입니다.

사회주의 혁명이 바로 공리주의의 오류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사회주의혁명가는 자신의 몸은 고달프지만 자신이 이룬 혁명이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리라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일부의 사람이 희생되더라도 절대 다수는 행복하리라 믿어서 각종 숙청작업에 참여했지만 결국 행복해진 사람이 누가 있었습니까? 즉, 자기 자신도 모르는 사람이 타인에게 행복을 가져다준다고 믿는 것은 거대한 오류일 뿐입니다.

즉 행복을 정의하는데 제 3자의 위치에 선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행복은 자기 자신의 행복을 정의할 수 있을 뿐입니다. 타인의 행복을 내가 정의했을 때, 타인이 그러한 행복을 인정했을 때에만 의미를 갖는 것이며, 그 행복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자신이 의도한 타인의 행복은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고로 공리주의는 윤리의 원칙으로 부적절합니다. 오로지 자기 행복의 원리만이 있을 뿐입니다. - 즉 자신이 무엇을 해야 행복을 얻을 수 있는지를 잘 이해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타인의 행복을 침해하지 아니하여야 합니다. 또한 자신의 행복은 타인의 도움에 의해 이루어질 수밖에 없으므로 자신의 행복을 위해 타인의 행복을 이루어주어야 합니다.

이러한 개개인이 인정한 개인의 행복이 모두 모인 것이 공익이며 다수의 행복이 되는 것이지 어떤 이가 최대 다수의 행복을 강변하더라도 그것이 최대 다수의 행복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어떤 이가 공익을 위한다 하면 타인이 자신의 행복을 찾는 과정에 대한 도움을 줄 수는 있어도, 타인의 행복을 정의해서 제공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지금 한국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최대 다수의 행복 개념은 국익일 것입니다. 국가라는 실체가 존재하고, 국가의 이익과 손해가 개별 국민의 이익과 손해와 별개로 존재한다는 개념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개념은 거짓에 불과합니다. 개별적인 국민에게 이익과 손해가 돌아가서 이익을 보는 국민이 손해를 보는 국민에게 이익을 이전하고도 이익이 남는 사람이 있을 때 대한민국 국민에게 이익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지 모르지만 나는, 혹은 다른 사람은 국가의 이익 때문에 손해를 볼 지 모르지만 국가적 관점에서 이익이 손해를 초과하기 때문에 국익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한다는 말은 잘못된 것입니다.

by teferi | 2009/11/16 17:09 | 잡생각 | 트랙백 | 덧글(0)
주류경제학의 이론적 한계, 베이비시터 조합 관련된 사고실험
유명한 경제학 주제로 베이비시터 조합이 있습니다. 변호사 부부로 이루어진 이 조합은 아기를 한번 맡을 때 쿠폰을 지급받고, 나중에 쿠폰을 주고 아기를 맡길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이 조합은 처음에는 성공적이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모두가 언제 할 지 모르는 외출을 대비해서 여유 쿠폰을 가지고 있으려고만 하고 아기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두가 외출을 할 수 없었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 주에 두번씩 아기를 맡기는 것을 의무화하자 아기를 맡는 일도 많아지고 아기를 맡기고 외출하는 일도 많아졌습니다. 나중에는 인플레이션의 조짐까지 보였다고 하죠.

이 일화는 화폐와 거래간의 지나치기 쉽지만 지나칠 수 없는 관계를 보여줍니다. 화폐가 없으면, 거래도 없다는 거죠. 아무리 재화가 있더라도 화폐 보유자에게 화폐를 주고 매각하지 않으면 다른 재화를 구매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주류경제학은 항상 무한한 수요/공급능력을 가정합니다. 그렇지만 어느 것도 실제로 무한하지는 않습니다. 전체 경제규모에 비해 너무나 작아 무시할 수 있는 개인을 가정한 이론이기 때문에 그렇게 가정한 것이지, 실제로는 공급도 유한하고 수요도 유한하죠. 화폐 공급량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주류경제학은 항상 개인이 화폐를 충분히 보유하고 있다고 가정합니다. 하지만 이는 지나치게 현실과 먼 가정이죠.

만일 베이비시터 조합의 쿠폰양이 제한되어 있으며, 쿠폰의 절반 이상을 특정한 개인이 보유하고 있고, 각 개인이 보유하고 있는 쿠폰양은 개인이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 적립해 놓고자 하는 양보다 작다면 어찌 될까요? 개인은 쿠폰을 보유하려고만 하고 아이를 맡기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거래는 위축되고 고통스럽습니다. 이 때 절반 이상을 보유한 특정한 개인은 쿠폰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을 수 있겠죠. 개인이 보유한 쿠폰이 필요양에 미치지 못할수록, 신규 쿠폰이 발행되지 않을수록 이자는 올라갈 수 있습니다. 대부가 없을 때보다는 거래가 활성화될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쿠폰을 빨아들여서 거래가 더욱 위축되고 쿠폰대부에 의존하게 되는 부작용이 발생하게 되죠. 따라서 화폐 발행이 제한된다면 화폐 소유자의 횡포가 기승을 부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제한된 재화에 따른 이익이라고 하여 화폐지대로 이름붙일 수 있을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20세기 이전은 금본위제의 시기였으며 중상주의와 맑스주의가 등장했지요. 중상주의는 중금주의라고 하는데 수출을 많이 하고 금을 비축하려는 정책을 말합니다. 아담 스미스는 금은 국부가 아니라고 비판하고 생산물이 국부라고 하였으나, 실제로는 금이 부족하면 화폐도 부족하고 거래가 일어나지 않아 국부가 증진되지 않습니다. 또한 금이 부족한 나라에 금을 빌려주고 이자도 받을 수 있죠. 금은 채굴할 수는 있으나 원하는 대로 채굴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20세기 이후 케인즈의 등장으로 금본위제가 폐기되어 인류는 디플레이션과 인플레이션, 고리대금의 굴레에서 좀 더 자유로워질 수 있었습니다. 또한 수출/수입 분쟁에도 금본위제보다 효과적이었죠. 누군가 화폐를 축적하려는 시도를 한다면 화폐가 시장에서 사라지기에 인플레 걱정 없이 화폐를 발행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적자가 누적되면 문제가 발생하지만 바로 화폐가 시장에서 사라져서 거래를 위축시키는 금 유출보다는 나은 것이죠.
by teferi | 2009/10/29 02:00 | 경제 | 트랙백 | 덧글(2)
그라민 은행에서 배우는 현 사회를 개선하는 방법
효과적인 사회 개선 방법으로 그라민 은행의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물론 그라민 은행처럼 소액대부를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라민 은행은 처음에는 조그많게 시작했으나 나중에는 엄청난 규모로 성장했습니다. 어째서 그렇게 되었을까요? 처음 시작할 때부터 지속가능성과 보편성을 고려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처음에 조그많게 시작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만일 크게 시작했다면 크게 주저앉았을 때 일어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라민 은행의 교훈을 바탕으로 사회를 개선하는 데 쓸 수 있는 방법론을 도출할 수 있습니다.

첫번째는 현실에서 출발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제로베이스에서 이상적인 사회를 설계한 다음에 그 사회를 만들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공산주의자가 그랬습니다. 그러나 그 사회가 실제로 도달하자 기존의 현실에서 발생하지 않았던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왜냐, 현실에서는 해결된 문제가 제로베이스에서 설계하면서 설계자가 고려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상적인 사회는 목표로서 가능할 지 몰라도 이를 그대로 현실로 만든다는 것은 위험면에서나 지식면에서나 옳지 않은 것입니다. 사회 전체를 뜯어고쳤을 때 어떤 문제가 일어날 지 모르며 그런 문제를 다룰 수 있는 지식은 실제로 운용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갖춰져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사회 전체를 뜯어고치는 것은 올바른 방법이 아닙니다. 현실에서 아직 고쳐지지 않은 문제를 하나하나 푸는 것이 진정한 개선의 출발점이 되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작게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작다고 결코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작은 일이라도 얼마든지 크게 키워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모두가 비슷한 욕망을 가지고 있기에 한 사람의 욕망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의 욕망도 충족되지 않을 수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작게 시작하는 것은 감당할 수 있는 일을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처음 시작할 때는 지식이 부족하기에 실패할 수 있습니다. 실패했을 때 손해를 감당할 수 있는 규모로 출발해야지 실패하더라도 그동안 축적된 지식을 가지고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작은 규모로 해서 성공한다면 자신이 지식을 가지고 있음을 현실에서 증명한 것이고 좀 더 큰 위험을 지고 규모를 더 키울 수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큰 규모의 일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는 작은 일에서 발생한 문제에 대한 해결방법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세번째는 지속가능성을 고려한다는 것입니다.
일을 시작할 때 일회성인가, 지속가능한가는 엄밀하게 검토하여 지속가능한 방법을 개발해야 합니다. 특정인의 일방적인 희생이 필요하다면 일반적으로 지속가능하지 않습니다. 예를 든다면 기부에 의존하는 비영리법인 모델입니다. 기부금을 내는 것으로 인해 어는 것이 거의 없기 때문에 기부금을 계속 낼 수 있는 유인이 없고, 사업을 성공적으로 진행하더라도 기부금이 늘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관련 당사자들을 전부 만족시킬 수 있다면 지속가능합니다. 그라민 은행과 같은 영리법인은 투자자에게 이익을 분배하고 고객에게는 타 대부업체보다 저렴한 이자율의 대부를 제공하며 직원에게는 월급을 제공하여 관련 당사자에게 만족을 제공할 수 있는 모델입니다. 사업이 성공적으로 진행되어 고객을 늘인다면 이윤이 늘어날 것이며 투자금 유치도 쉽게 할 수 있고 직원도 많이 채용할 수 있으며 고객 역시 자신의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by teferi | 2009/10/28 15:19 | 정치 | 트랙백 | 덧글(4)
좌파 정치경제이론을 지지하는 것은 죄악입니다.

좌파 정치경제이론이라 함은 일반적으로 맑스의 이론에 기반하고 노동과 노동자를 중시하고 자본주의에 반대하며 기성 체제에 저항하는 것 등을 포괄하고 있는 이론을 말합니다. 좌파와 우파이론이 동등한 가치가 있고 동등한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사람도 있으며, 좌우의 날개로 비유하며 한쪽이 없어져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좌파 정치경제이론은 결코 우파의 이론과 동등한 가치를 가지지 않습니다. 좌파이론을 지지하는 것은 곧 그가 속해있는 공동체에 대한 죄이며 전 인류에 대한 죄이기도 합니다.

어째서 그럴까요? 그 이유는 바로 좌파이론은 과학적 사고방식에 근거하지 않고 음모론과 권위주의에 근거하였기 때문입니다.

음모론의 정의를 위키백과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음모론(陰謀論)이란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킨 사건의 원인을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할 때, 배후에 거대한 권력조직이나 비밀스런 단체가 있다고 해석하는 것을 말한다. 이 음모론의 정의는 바로 좌파이론의 전개방식과 정확히 들어맞습니다. 그람시의 헤게모니이론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노동자가 혁명을 일으키지 않는 이유를 배후의 거대한 지배계급의 문화 헤게모니때문이라고 해석하는 것입니다.

좌파이론은 현실의 부조리를 음모론으로 설명합니다. 빈부격차가 발생하는 원인은 부르조아 계급의 기득권 때문이다. 노동자가 자본가보다 더 못사는 이유는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하기 때문이다. 실업자가 발생하는 이유는 산업예비군을 만들어 노동자를 더 잘 착취하기 위한 것이다. 이렇게 부조리한 현 체제가 유지되는 원인은 현 체제를 유지하는 요소 - 정부, 제도, 문화, 철학, 각종 사회이론 등 -가 부르조아 계급의 이익을 위해 복무하고 있기 때문이며, 따라서 궁극적으로는 혁명으로 현 체제를 타도해야 한다는 것이 좌파이론의 주된 내용입니다. 즉 현재 사회에서 발생하는 문제점은 전부 악한 누군가의 책임이고, 현 사회가 유지되고 있는 이유도 악한 누군가를 위한 거대한 음모의 일환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좌파는 권위적입니다. 이는 이론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현실을 관찰하여 이론을 검증하는 과학적 사고방식과 대비되는 것으로, 권위있는 누군가가 한 말을 그대로 믿고 따른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맑스입니다. 맑스의 이론이 현실을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는지에 대한 비판적인 자세를 가지고 있는 좌파는 있을 수 없습니다. 만일 비판적인 자세를 가진다면 예의 음모론이 힘을 발휘합니다. 즉 맑스이론에 대한 비판은 부르조아의 착취를 숨기려는 부르조아의 모함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좌파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아니하고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됩니다. 즉 현재의 문제점만 보고, 그 문제점이 부르조아 때문이라는 결론을 미리 내려놓은 뒤에 그 결론을 잘 설명하는 것 같은 이론을 취사선택합니다. 그리고 공산주의자의 입맛에 맞는 이론이 선택되면 그 이론은 현실의 관찰로 검증하지 않고 무조건 참으로 믿고 권위를 부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좌파는 러시아 혁명과 뒤이은 스탈린의 숙청, 중국 혁명후 마오쩌둥의 숙청, 베트남의 적화통일후 숙청, 공산주의사회에서 한결같이 일어나는 독재와 빈곤은 무시하거나 도마뱀꼬리를 짜릅니다. 즉 진정한 맑스주의자가 아닌 사람이 집권해서 비극이 일어났고, 맑스주의에는 잘못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의 음모론을 설파합니다. 즉 부르조아가 공산주의를 폄하하기 위해 침소봉대한다거나, 스탈린과 마오쩌둥에 반대한 공산주의자가 있었음에도 부르조아의 공작으로 밝혀지지 않았다거나 등등.

이론은 옳은데 현실에 맞지 않는다거나,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날아야 한다거나 하는 식의 말은 좌파이론에 결코 맞지 않는 것입니다. 좌파 이론은 다른 게 아니라 틀린 것입니다. 음모론에 휩싸여 비판적 검토를 할 수 없는 이론은 이미 죽은 것입니다. 따라서 이론이 틀려서 현실에 맞지 않는 것이고, 국가는 좌우 스펙트럼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틀린 이론을 퇴출시키고 올바른 이론이 힘을 발휘할 수 있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by teferi | 2009/10/28 14:33 | 정치 | 트랙백(5) | 핑백(2) | 덧글(215)
도덕은 새로운 의미에서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고보니 단멸교의 주된 이념을 소개하지 않았군요.

글을 잘 보고 있습니다. 다만 도덕부정론에 대해서는 이견을 좀 가지고 있습니다.
분명 하늘이 내린 도덕이라는 것은 있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사람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에서 도덕이 발생할 수 밖에 없었으며, 이어져 오지 않았을까요.

사람은 미래와 무한을 가정할 수 있습니다. 살인하거나 강간하거나 도둑질하거나 하는 일이 반복될 때 어떤 결과를 가져올 지 예상할 수 있습니다. 살인하는 것이 용납된다면 서로 살인해서 살인을 잘하거나 잘 막을 수 있는 사람만 남을 것이며, 강간하는 것이 용납된다면 장기적인 남녀관계와 아이의 양육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고, 도둑질하는 것이 용납된다면 성실하게 자신의 노력으로 살려고 하지 않고 도둑질하거나 도둑질당하지 않는 것에만 신경을 집중할 것입니다. 따라서 이와 같은 행동을 하는 사람을 여러 사람이 뭉쳐서 벌을 준 것입니다. 그러나 크나큰 자선과 보시를 베푸는 것을 계속한다면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이 곤경에서 벗어나는 등 일반적으로는 다른 사람에게 이롭기 때문에 여러 사람이 뭉쳐서 권장한 것이겠지요. 또한 서로서로를 약탈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서로서로를 약탈하며 살아가지 않는 집단에게 삶의 터전을 빼앗기기도 했을 것입니다. 즉 도덕은 인간사회가 유지되기 위해 필요했던 것입니다. 다만, 오래된 도덕은 지금과 맞지 않는 규정이 많아서 고쳐질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오히려 지금 필요한 것은 도덕부정론보다 욕망긍정론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욕망 그 자체는 어떤 일이 있어도 실현되어야 하는 일이며, 그런 욕망을 추구하는 과정이 반복될 때에도 다른 사람의 욕망 실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올바른 방법은 도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일 자신의 욕망이 다른 사람의 욕망과 충돌함에도 이를 해소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욕망실현은 다른 사람에 의해 방해를 받게 될 것입니다. 이런 행동은 그저 어리석은 일일 뿐입니다. 다른 사람의 욕망과 충돌하지 않고 욕망을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는데 열등한 방법을 택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는 방법은 오직 하나, 다른 사람의 욕망을 실현하는데 도움을 주고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전자와 동일인일 필요는 없음- 도움을 자신이 준 도움에 근거하여 구하는 것입니다.

by teferi | 2009/10/18 22:52 | 잡생각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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