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이렇게 망하려고 그렇게 살았습니까? (부제 - 조선처럼 신라가 살았다면?)
조공, 조선의 대 중국 외교와 관련한 짧은 이야기

명나라 초기에 조선이 명나라에 저자세를 보인 것은 그때의 사정이 어려워서 그랬다고 변명할 수는 있으나, 명나라가 조선을 지켜줄 힘이 없던 말기에도 저자세를 계속 보인 것을 알고 있는 지금은 그런 변명은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조선은 명백히 형편에 따라서 저자세를 보인 것이 아니라, 한번 주인을 계속 주인으로 섬기는 노예로 세월을 보내다가 적국에 그럴듯한 반항한번 못해보고 비참하게 망했습니다.

조선시대의 지배층이 얼마나 답없고 비굴한 삶을 살았는지 상상하려면, 삼국을 통일한 위대한 신라 대신 조선과 같은 역사를 가진 신라를 상상해볼 수 있습니다.

-------------------------------------------------------------------------------------

신라는 어쩌면 가장 작은 나라에서 출발했고, 호남평야처럼 생산력이 높은 지역에 있지도 않은, 산맥과 강으로 가로막혀 생존을 이어가는 그저 그런 나라였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라는 그 좁은 지역에서 떨쳐 일어나 가야를 아우르고 영토를 넓히며 한강을 점유하고 백제와 고구려의 연합공격에도 결코 상실하지 않았으며, 백제와 고구려를 결국 멸망시키고, 마침내 당대 최강국 중의 하나인 당나라와의 전쟁에서도 승리하여 힘으로 평화를 얻은 장쾌한 역사를 기록하였습니다.

그러나 신라가 이런 뛰어난 나라가 되는 것이 반드시 필연적인 것은 아닙니다. 만일 신라에 조선과 같은 생각을 하는 지배층이 있었다면, 한때 신라는 고구려와는 상대도 되지 않는 나라였기에, 스스로 부강한 나라가 되는 대신 고구려에 사대하여 나라를 보전할 수도 있었습니다. 

신라가 왜의 침략을 받은 경우에도, 신라군은 땅에서 싸우면 왜군에 반드시 패배하고, 국토의 전역을 거의 점령당하고 약탈당했음에도 그저 고구려의 구원군에 의존하여 적을 국토에서 몰아내는 것만 간신히 성공하여, 왕조의 명맥만 유지하는 것에 만족하는 나라가 되었을 수도 있었습니다.

신라가 서로 분열되어 있던 가야연맹을 외부 사정을 보아 가며 기회가 왔을 때 한 나라로 아우를 생각은 아니하고, 가야 합병을 시도하면 혹시나 고구려에게 밉보이지나 않을까, 백제에 밉보이지나 않을까 노심 초사하다가 간신히 갸야의 영역 중 약간의 땅만 얻어 4군 6진이라고 거창하게 이름을 붙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고구려가 수나라와 당나라와의 전쟁에서 거의 망해 가더라도, 신라에는 예전부터 해오던 일이니까, 고구려가 왜나라로부터 신라를 구해준 재조지은에 보답하는 것은 도덕과 의리이며 이를 저버리자고 주장하는 사람은 은혜를 모르는 금수와 같은 사문난적이니까, 그대로 고구려를 섬기자는 사람들이 정권을 잡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고구려가 망해갈 때 신라는 사대주의에 빠져 고구려를 땅을 뺏을 생각도 못하다가, 백제가 고구려의 땅을 점유하여 더 강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윽고 백제가 본격적으로 고구려를 멸망시키기 전 배후를 안정시킬 목적으로 신라를 침략하였을때 너무나도 빠른 진격과 외국 군대의 지원 없이 싸우면 패배하는 신라군 때문에, 신라왕이 피난을 가지도 못하고 내심 멸시하던 백제왕에게, 삼궤 구고두의 굴욕을 당하고 백제의 속국이 되어버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백제는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신라는 고구려의 영역까지 아우른 백제를 섬기게 됩니다. 나중에 백제도 점차 망해가지만 신라는 여전히 백제에 대한 사대를 멈추지 않습니다. 

신라는 그 긴 평화(?)기간 동안 해놓은거 하나 없이, 내정은 문란해지고 신라군은 더더욱 무능해져서, 나중에는 외국 정규군이 아닌 신라 본국에서 일어난 농민 봉기 하나 진압 못해서 신라는 백제와 왜에 원군을 요청하게 됩니다.

자국의 정치문제에 외세를 개입시킨 반작용으로 신라의 실권자는 백제에 붙들려 가고, 신라의 왕후는 왜국 깡패의 칼에 맞아 죽는 등 갖은 추태를 다 보이다가, 왜국이 본격적으로 신라를 정벌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신라를 차지하는 것을 가로막는 외세 - 백제, 통일중국 - 을 전부 전쟁에서 이기자, 신라를 보호해줄 나라가 하나도 남지 않아 신라는 왜국에 전쟁한번 해보지 못하고 그저 옥새를 내주며 풀썩 무너지고 마는 그런 나라가 되었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따위 역사를 기록한 나라를 보는 후세 사람은 이렇게 이야기할 수밖에 없을 거 같습니다.
"그따위로 더럽게 망하려고 자존심도 밸도 없이 외국에 엎드려 절했습니까?"

by teferi | 2015/03/06 22:55 | 잡생각 | 트랙백 | 덧글(50)
연봉 3천만원 근로소득자는 실질적으로 면세자입니다.
우리나라 소득자 반이 면세자라는걸 믿을수 없다고?

본인이 얼마나 세금내는지도 모르고 있는 사람이 많군요.

연봉 3천만원이 얼마나 세금을 안내는지 직접 계산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3인 가구 기준으로 하죠.

1.총연봉: 30,000,000
2.비과세: (1,200,000) - 1달 10만원 식대지급하면 비과세입니다.
3.총급여: 28,800,000
4.근로소득공제: (12,630,000) - 3천만원 이하는 (총급여-1500만)*10%+1125만 공제됩니다.
5.근로소득금액: 16,170,000
6.종합소득공제: (12,042,400)
1)인적공제: (3,000,000) 본인, 부양가족 2인*150만, 맞벌이 가정
2)연금보험료공제: (1,296,000) 총급여*4.5%
3)보험료공제: 건강+요양보험 (903,600) 총급여*2.945%+총급여*2.945%*6.55%
                    고용보험 (172,800) 총급여/12*0.55%*6+총급여/12*0.65%*6
                    보장성보험 (1,000,000)
4)교육비공제: 유치원~초중고 (3,000,000)
5)신용카드등공제: 일반 신용카드 900만/ 직불카드 300만 총 1200만 사용 가정했을때 (1,170,000)
7. 과세표준: 5,627,600
8. 소득세 산출세액: 337,656
9. 근로소득세액공제: (185,710)
10. 소득세 결정세액: 151,940
11. 지방소득세 결정세액: 15,190
12. 세액 총합계: 167,130

계산을 보시면, 3천만원 돈을 받아서 소득세는 17만원 (0.57%)도 내지 않습니다. 거의 필수로 가입하는 보장성 보험, 당연히 발생하는 교육비, 생활비로 발생하는 신용카드 공제만 따져도 이정도입니다. 이에 추가하여 전세자금대출공제/월세액공제 3백만원 또는 퇴직연금/연금저축공제 4백만원을 받게 되면 과세표준은 더욱 0에 가까워지겠죠. 3천만원을 넘지 않는 연봉을 주는 직업을 흔하게 찾을 수 있는 것을 보면 근로소득자 절반이 면세자라는 것은 결코 허황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by teferi | 2013/10/02 01:23 | 정치 | 트랙백(1) | 덧글(10)
왜 소위 '시장주의 경제학 지지자'는 멍청한가

이 세상에 멍청한 사람은 많지만 그 멍청함이 가장 세상에 해악을 끼치는 부류는 요즘도 맹위를 떨치고 있는 시장주의 경제학자와 그 지지자들이라고 할 것입니다.

시장주의 경제학자가 멍청한 이유는, 본인들이 발견한 아주 제한된 조건에서 적용되는 이론을 가지고 그 전제를 무시하고 모든 경제현상에 그 이론을 적용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이론이 얼마나 허황된 전제에 가득차있는지를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자 합니다.

1. 물리학적으로는 다르지만 경제학적으로 같은 그림?!


아래 왼쪽 그림과 오른쪽 그림에서 A와 A', B와 B'의 위치는 같습니다. 마찰이 없다고 가정한다면 왼쪽 A에서 B로 공을 굴리는 것과 오른쪽 A'에서 B'로 공을 굴리는 경우를 비교하면 각 지점간 공의 평균속도는 현저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기초 물리학 시간에서 배웠을 것입니다. 시장주의 경제학에서는 이 두가지 경우는 '동일'합니다. 아니, 시장주의 경제학은 아예 A 지점과 B 지점에 대해서 어떻게 이어지는지 생각이 없다는 것이 정확합니다.

어떤 말이냐구요?

위의 그래프는 경제학 시간에 흔히 배우는 수요공급 곡선입니다. 시장주의 경제학자들은 머리속의 추측과 현상의 단편적인 관찰로 경제현상이 B의 위치에 있지 않으면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 이루어지는 점 B로 움직인다는 이론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이를 물리학에서 쓰는 표현을 빌린다면 B가 아닌 점과 B 사이에는 B로 움직이려는 위치 에너지가 존재한다고 표현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앞의 그림에서 보았듯이 서로 위치가 동일하더라도, 그 위치에너지가 전환되는 경로에 따라서 경과하는 이동시간에 현저한 차이가 존재하지만, 시장주의 경제학에서는 이 부분에 대하여 밝히는 것을 방기하고 있습니다. '즉시' 이동한다고 가정하고 이론속에 묻혀서 보이는 현실에서 눈을 감아버리거나 '언젠가는 -설령 인간의 수명에 비교하여 영원에 가까운 시간이 걸릴지라도-' 이동할거라는 것만 강조하며 '어떻게' 이동하게 되는지는 별반 연구결과가 발표된 것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이 부분이 밝혀지지 않는다면 '정부가 모든 간섭과 개입을 중지하고 시장 구성원에게 자유를 부여한다면 시장균형을 달성할 수 있다.'는 주장은 근거없는 기만에 불과한 것입니다. 오히려, 실제로 정부가 개입을 중지하였을 때 완전시장에 가까운 결과가 정말로 달성되었는지는 결코 밝혀지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완전시장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것은 간접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바, 빈부격차가 확대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완전시장에서는 모든 기회의 비용이 동일하기에, 동일한 시간 투여에 대하여 동일한 대가를 얻어야 합니다. 그 형태가 휴가라는 효용을 받든지, 노동을 공급하고 대가를 받든지, 추후 노동시간을 절감할 수 있는 자본을 형성하여야 합니다. 동일한 시간 투여에 대해서 효용도 대가도 자본도 공급하지 못하는 직업은 완전시장의 세계에서는 즉시 시장에서 퇴출되어야 하지만, 현재의 상황을 보면 아무리 시장주의의 광신자라고 할지라도 특정 개인이 아무런 대가도 자본도 공급하지 못하는 직업 -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비정규직 등 - 을 '선택'하고 그 선택이 오히려 '증가'하는 것은 그 개인이 해당 직업에 잠재된 효용을 얻기 때문이라고는 절대 주장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주의 경제학자들은 현재의 상황에 대해 안보여 안들려를 시전하면 그만입니다. 왜일까요? 언젠가는 그들이 발견한 '법칙'이 완전시장의 유토피아로 그들을 데려가 줄 것이니까요! 지금의 상황은 유토피아로 가기 위한 하나의 통과의례에 불과하며 그들의 '법칙'은 언제 어떻게든 완전시장을 실현하고야 말 것이니까요. 저 빌어먹을 정부개입주의자와 공산주의자를 모조리 치워버리고 나면 말이죠.

 2. 시장의 장기균형을 찾아봅시다 - 제게 '정상석유가'를 알려주세요.

시장주의 경제학자들이 공급이 비탄력적인 재화의 가격변동을 설명하는 이론으로 거미집 이론이 있습니다.

저는 이 멍청하기 그지없는 그림을 볼 때마다 항상 생각하죠. "대체 이 거미집의 중심은 어디에 있을까?"

자 여러분. 시장주의 경제학자들이 주입한 멍청한 수요 공급곡선은 이제 집어치웁시다. 여러분이 나고 태어나서 과연 농산물 가격변동이 시간의 변화에 따라 가격변동의 크기나 그 빈도가 줄어들었는지 생각해보자구요. 그리고 언젠가는 가격변동이 없는 완전시장이 올 조짐을 보이는가 말이죠. 이 그림은 시장주의 경제학자가 신앙하는 수요 공급곡선에 어거지로 끼워맞추기 위해 근거없는 추측을 동원한 것에 불과합니다. 실제로는, 그때 그때의 단기적 수요와 공급에 따라 장기적 평균가격과 비교할 때 폭등한 단기균형가격과 폭락한 단기균형가격이 있을 뿐이지, 폭등과 폭락을 반복하면서 그 변동의 크기가 점차 줄어들어 어느 '장기적인 균형점'에 안착하지는 않는 것입니다. 단지 그 순간에 유효한, 장기적인 평균가격에 가까운 단기균형점이 단기적 수요와 공급에 의해 형성되는 시점이 있는 것 뿐이며, 그 순간의 시점이 지나고 나면 가격파동이라고 부르는 현상이 반복될 뿐이죠.

위의 석유가격동향 그래프를 보시지요. 대체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르면 '장기' 가 되는 것일까요? 대체 어느 단기평균이 장기적 평균으로 수렴할까요? 그 어느 시장주의 경제학자라도 이 그래프가 시간의 변화에 따라 '수렴'한다고는 절대로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현재 미국 이라크 침공 이후 - 벌써 9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 유가가 그 이전에 비해 폭등하였는데, 지금 유가는 그렇다면 장기적 평균보다 훨씬 높은 버블상태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누가 있을 것이며, 본인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얼마나 돈을 투자할 수 있을까요?

소위 장기라고 하는 기간은, 절대 현실 세계에서 가능하지 않은 가정을 시장주의 경제학자들이 발견한 '법칙'을 어거지로 끼워맞추기 위하여 만들어낸 가상의 기간에 불과합니다. 현실에서는 결코 실현될 일이 없는 것입니다.

소위 거시경제에서의 장기(long run)의 특징으로 꼽는 것을 살펴보자면

사람들의 기대가 실현될 정도로 긴 기간이다(기대물가수준과 실제물가수준이 같다). :특정한 단기적 시점에 우연히 일치하는 수는 있어도 단순히 많은 기간이 지났다고 해서 기대물가수준과 실제물가수준이 같아질 일을 결코 없습니다. 이의를 제기할려고 하시는 분, 저와 20년 후의 짜장면 가격에 대해서 내기한번 하죠. 네? 20년은 너무 단기적이니 200년 이후에야 기대물가수준이 실제와 같아진다구요?

임금이나 물가 경직성이 없고, 시장청산이 일어난다. : 그참. 배추파동 무파동이 40년 전에는 자주 일어나는데 지금은 자주 안 일어난다는 거군요. 네?

완전고용산출량이 실현되며, 생산요소의 완전고용이 달성된다. : 자, 실업없는 사회는 기다리면 옵니다. 좀 믿어요, 온다니까요?

단기균형은 장기균형으로 수렴한다. : 그러니까 장기균형으로 수렴하는 정상석유가를 좀 알려주세요. 저도 투기좀 합시다.

장기라는 개념은 미시경제와 거시경제를 구분할 줄 모르는 멍청한 시장주의 경제학자들이 거시경제를 미시경제처럼 생각하려면 이렇게 해야 하겠구나~ 하면서 만든 개념에 불과합니다. 미시경제와 거시경제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단지 하나의 경제주체와 여러개의 경제주체의 차이일까요? 아니죠. 미시경제와 거시경제의 차이점은 거시경제는 필연적으로 수요가 제한되어 있고 공급이 제한되어 있을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미시경제는 내가 빠져도 대신할 수 있는 무한에 가까운 경제주체가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개개 경제주체의 선택이 영향을 미치지 않는 무제한 수요와 무제한 공급을 가정하여 수요와 공급곡선을 구성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시장주의 경제학자들은 이 '법칙' 에 흠뻑 빠진 나머지 경제학이 기본적으로 희소한 재화의 배분을 공부하는 학문이라는 것을 망각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거시 경제를 분석할 때에도 무한의 수요와 무한의 공급을 가정하고자 했지요. 그런데 거시 경제에서는 무한의 수요와 무한의 공급이라는 것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전체의 시각에서 보면 경제주체는 한정되어 있고 경제주체가 이용할 수 있는 재화도 한정되어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지요. 수요공급곡선의 세계에 흠뻑 빠진 시장주의경제학자는 이런 현실세계를 인정하지 않고, 시간이라는 실제 세계의 개념이 아닌 머리속의 관념을 이용하여 수요공급곡선의 세계로 도피해버린 겁니다. 시간이 무한정 있으면 수요도 무한정, 공급도 무한정 일어나겠지!

아니요, 시간은 언제나 우리에게 현재밖에 주지 않습니다. 시간이 무한정 있다고 해도, 과거는 이미 지나가버린 겁니다. 우리는 언제나 현재를 맞닥뜨리고 있고 현재의 시점의 문제를 해결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과거의 현자 존 메이너드 케인즈는 이렇게 말했죠.
" 장기적으로는, 우리는 모두 죽는다."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장기는 영원히 오지 않는다."

이상이 제가 하고자 하는 말이었습니다.
by teferi | 2012/04/24 05:10 | 경제 | 트랙백 | 덧글(9)
왜 대한민국인은 조선의 역사를 부정해야만 하는가
역밸에서는 조선의 역사를 부정하는 사람들을 조선까라고 부릅니다.

또한 조선까는 종종 성토의 대상이 되는데, 조선 500년 역사중 패망의 시기만 보고 조선 500년 역사를 부정한다는 것, 과거를 현재의 잣대로 비난한다는 것이 조선까를 비난하는 사람의 논리입니다.

그러나, 이는 역사를 어떻게 평가하여야 하는가에 대한 기준의 부재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과거를 과거의 기준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일종의 내재적 접근법입니다. 그리고 내재적 접근법의 단점은 존재 그 자체의 합리성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경쟁적인 환경에서 생존하고 있는 모든 생물이나 조직은 존재하는 그 자체로 합리적입니다. 그것들은 존재할 만한 이유와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존재하고 있으며 그렇지 않다면 벌써 멸망하거나 다른 생물종에 멸종당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조선 역시 마찬가지로, 500년간 존재하였다는 그 자체만으로 그 당시에는 충분히 존재할 이유와 능력이 있었던 국가였습니다. 그러나 이 기준으로 역사를 평가할 경우, 단지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만으로 긍정평가를 받게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어느 곳의 듣보잡 왕국이든, 부족공동체든, 군벌이든 간에 역사에 기록되었다면 그 자체만으로 조선과 동등하게 그 당시에 가치가 있었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들은 존재할 만했기에 존재하였으며 존재할 만하지 않았으면 역사에 기록되지도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모든 역사가 다 좋고 가치있다는 관점이 과연 온당할까요? 현재를 바라보면 당연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북한과 한국은 동시대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 두 나라가 과연 동등할까요? 북한도 더 못한 환경과 비교하면 여러가지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본인의 성향을 아는 사람이라면 본인이 결코 북한을 칭찬하기 위함이 아니라는 것을 알 것입니다) 아프리카 사하라 이남처럼 군벌 도적떼가 난립하여 내전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것, 핵을 가지고 있다는 것, 외교에서 교묘히 외줄타기를 할 줄 아는 능력이 존재한다는 것 등등 북한이 존재할만한 이유가 있기에 아직까지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과 비교한다면 이런 장점의 의미가 퇴색되고 체제의 정당성이나 동원능력, 내부적 안정과 외교적 역량이 뒤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현재 한반도 전체의 영토와 사람에 대한 배타적 영유권을 주장하는 체제경쟁상황에서 어느 국가가 망하고 어느 국가가 살아남을 가능성이 많은지는 명약관화한 것입니다.

따라서 그저 당시에 존재하였다는 것 뿐만이 아니라, 향후에도 지속적으로 그 존재를 유지하도록 미래에 대해 대비하였는가에 대하여 추가적인 평가가 필요한 것입니다. 향후 미래가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예측하여 판단해야 하는 현재의 평가와 달리, 우리는 과거에 대해 당시에 시대가 어떻게 변해온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 즉 우리의 현재가 당시의 미래인 것입니다.

우리의 현재에 얼마나 적응할 수 있도록 각 국가가 어떻게 당시에 미래를 대비하였는가, 우리의 현재를 만들어 온 국가들 - 당대에 가장 앞섰던 나라들에 비해 얼마나 현재와 근접한 미래를 대비하고 있었는가를 평가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 관점에서 본다면 조선의 저력을 인정할 수도 없으며 조선의 역사를 긍정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간혹 고려나 신라를 언급하는 사람도 있지만, 고려나 신라시대와 비교하여 조선시대는 특별한 시대입니다. 고려와 신라시대와 타 국가와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았으나, 조선시대에 영국과 프랑스 독일 미국 등 현재를 이룩한 서구열강이 과학혁명과 산업혁명, 민주혁명등 현재를 구성하는 주요한 발전을 이루는 동안 조선은 정체하였기 때문입니다.

조선이 당시에 상상할 수도 없었던 우리의 현재를 갑작스럽게 맞이하였다고 변명하는 사람도 있으나, 그러한 변명만으로 조선이 책임져야 했던 한민족의 복리와 권리를 내팽개쳐버린 것을 정당화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분명 미래는 쉽게 예측가능하지 않으나, 현재 시점에서 과거를 살펴본다면 과거에서 현재로의 변화가 완전히 불규칙한 것이 아니었으며, 또한 현재가 과거를 살아간 사람의 의지와 관계없이 던져진 것도 아니었습니다. 현재로의 변화를 선도하는 과거의 앞선 국가의 의도적 활동이 현재를 만들고 주도하였으며, 조선과 같이 뒤쳐지고 정체된 국가에게만 현재가 던져진 것일 뿐입니다.

과거에 현재로 변화를 선도한 국가라 할지라도 그 방향으로의 변화가 항상 필요불가결한 것은 아니었으며, 현재와 거리가 먼 선택을 할 수 있었고, 오히려 그 편이 더 당대에 가능성이 있었던 길일 수도 있었습니다. 이슬람제국처럼 어떤 시기에는 현재와 가까웠으나 다시 멀어진 국가도 있으며, 고대 그리스나 로마처럼 민주주의와 법치라는 선도적 개념을 도입하고서도 다시 그 개념과 멀어졌으나 이후 후계국에게 기초를 제공한 나라도 있습니다. 과거의 영국이나 미국도 항상 지금처럼 번영과 선도의 길로 향하지 않고 언제든지 후퇴할 수 있었으며, 그들의 후퇴가 얼마든지 인류 전체적인 제 2의 제 3의 암흑시대로 역사에 기록되었을 가능성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을 볼 때 어느 시기 어느 장소라고 하여 반드시 특정한 경로를 걸어야 한다든지 특정한 관념의 포로가 되어야 한다는 결정론적 시각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고대 그리스는 주변 환경이 전부 독재 왕정이었으나 왜 민주주의제도를 도입하였으며, 고대 로마는 고대 그리스나 고대 왕국의 길을 가지 않고 법치를 도입하였는가 질문을 해야만 하며, 어째서 서양인들이 과학적 사고와 천부인권 민주주의를 생각할 동안 조선인은 음양오행설과 군신유의 장유유서라는 생각밖에 할 수 없었느냐는 질문을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조선이 혁신적 관념을 도입하여 앞서나갈 가능성은 분명히 존재하는 것입니다.

또한 당대의 관념, 당대의 기준으로 성공한 국가가 계속 버텨서 성공적으로 변화를 따라잡은 경우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영토와 인구, 군사력은 언제 어느때이건 타국의 침략에 맞서 버틸 수 있는 힘이었으며 넓은 영토와 인구를 보유하였지만 철학, 제도, 기술등이 뒤떨어진 국가가 영토와 인구를 소모하면서 버티고 이후 따라잡는 형태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1차 세계대전에서 뒤떨어진 철학, 제도, 기술에도 불구하고 독일에 맞서 버텨내고 2차 세계대전에서 결국 어느정도 따라잡아 영토와 인구의 힘으로 이긴 러시아나 전국이 식민지가 되는 것을 피하고 일본의 침략에 맞서 버티고 최근에 변화를 따라잡고 있는 중국, 역시 너무 커서 한 국가로 다 넘어가지 않고 버텨내고 비록 일부의 영토이지만 주된 민족의 영토를 지켜내고 변화를 따라잡은 오스만 투르크-터키를 보면 조선 역시 과거에 영토의 확장이 일정 수준 이상이었다면 일본이 단번에 식민지로 삼는 일을 할 수 없었으며, 변화를 따라잡을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다른 가능성은 일본과 같이 서양의 침략을 받고서야 대응하였으나 내부개혁을 한 이후 변화를 따라잡는 것입니다.

이 3가지 가능성이 있었지만 조선은 그 중 어느 하나도 만족시키지 않았기에 시대가 변하자 그대로 망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냥 망한 것도 아니고 일본에 식민지로 먹혀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조선인과 그 후예는 나라없는 백성이 되었으며, 조선총독부가 토지조사사업 등에서 일본인 편향적인 결정을 내릴 때 옛조선인과 그 후예는 어디에 항의할 수도 없었으며 일본군 시위진압부대에 의해 학살과 방화가 일어나도 명예회복과 보상을 받을 길이 없었으며 유언비어로 살해당할 때 살해용의자에 대해 응분의 사법처리를 요구할 수도 없었고 원하지도 동의하지도 않았고 의사를 표시할 기회도 없었던 전쟁에 동원되어 물자를 빼앗기고 전장에 나가서 목숨을 잃었으며 노무자로 끌려가 고통을 받고 정신대라는 명목으로 성학대를 받았습니다.

여러분들은 이런 학대와 모욕과 억울함을 견딜 수 있겠습니까. 무슨 죄를 지었기에 조선인의 피를 이어받았다는 것만으로 이런 억울한 대접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까. 당시 제국주의일본을 이끄는 일본인에게 제대로 사람대접하라고 항의해도 별무소용일 것입니다. 일본인에게 조선인의 후예는 그들의 일부가 아니며, 조선인의 후예가 받는 고통을 그들의 고통으로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문화적, 감정적, 혈연적으로 일체감을 느끼며 한 공동체를 이루어 서로의 고통을 공감하고 서로를 위해 노력할 수 있는 일군의 사람들이 한 정치적 단위를 이루도록 독립하여 각자가 각자에게 사람대접을 하도록 하는 것이 고통을 피하기 위한 최선의 수단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정치적 단위는 조선이 망하지 않았더라면, 망하더라도 외세의 간섭을 억제하고 조선인 내부의 힘으로 조선인과 한반도를 영위하는 다른 정치적 단위를 배출해 내었다면 유지되었을 것입니다. 조선의 어리석음 때문에 우리의 조상은 고통받았고 억울함을 겪었고 상처를 받았습니다. 우리는 근현대의 역사를 배울 때마다 조상의 고통에 공감하며 가슴이 답답해짐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저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왕조가 하나 생기고 하나 망하는 그런 개념으로 조선을 받아들일 수 없고 받아들여서도 안 됩니다. 왕조가 망할 때가 되었는데 하필이면 그때가 서세동점기였고 하필이면 그때에 서양을 따라잡고 있는 일본이 곁에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당했다는 식의 역사관이 수동적이고 당하기만 하는 것을 당연한 것처럼 아는 대한민국인을 양성할까 보아 두렵기까지 합니다. 조선이 미리 서양으로 먼저 갔으면 발전하는 서양을 미리 보았을 것이며 주변 국가에 대한 정보수집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면 영국의 무기가 매우 강하다는 것 일본이 힘을 기르고 한국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며 역대 왕조가 망한 원인을 파악하여 미리 대비하였으면 세도정치를 겪지 않고 내부개혁을 할 수 있는 내부역량을 마련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적극적인 정복활동을 노렸다면 처음 시작했을 때 조선의 힘의 1/10도 못했을 누루하치가 명의 방해를 물리치고 여진족을 통일한 역사가 조선의 여진족 흡수라는 다른 역사로 나타날 수도 있었습니다. 비겁한 변명은 이제 집어치워야 합니다.

작금의 정세도 그리 대한민국에 이롭지 않은데, 조선 옹호자들은 그럼 이제 대한민국도 망할 때가 되었다고 할 것입니까? 하필이면 미국이 망하고 중국이 흥하게 되었고 하필이면 민족이 통일되지 못했고 하필이면 강대해진 중국이 한반도에 대해 역사재해석을 시도하며 형성된 영토야욕이 가시화되어 이후 망하게 되었다고 할 겁니까? 하필이면 그런 미래가 올 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대한민국은 정말 괜찮은 나라였지만 망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할 겁니까?

지금부터 그런 평가를 하게 되는 것은 누구도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조선 옹호자들의 사고방식은 이런 평가와 일맥상통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비록 작은 나라이지만 분명히 여러 기회가 있습니다. 우리가 외부환경을 탓하고 우리에게 열린 기회의 문을 보지 않을 때 그 문은 닫히게 될 것입니다. 조선에게 열려있었던 가능성과 그 가능성이 현실화 하지 않았던 역사를 교훈삼아 대한민국은 일차적으로 대한민국인과 그 후손을 위하여 바람직한 미래를 대비하고 또 선도하여야 하며 더 나아가서는 대한민국이 전인류의 복리를 증진시키는 역할을 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by teferi | 2010/08/31 18:16 | 잡생각 | 트랙백 | 덧글(11)
동성애라는 정체성은 무조건 인정받아야만 하는 것일까요?
홍세화가 프랑스의 똘레랑스 사상을 소개한 이후로 똘레랑스는 그야말로 절대진리인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이성과 합리주의에 대해 의구심을 가진 포스트모더니즘 사조에도 부합하고, 대중의 도덕적 직관에도 부합하고, 자신은 다른 의견에 대해 자유로이 받아들이는 똘레랑스를 가지고 있지만 자신을 반대하는 남은 그렇지 않은 앵똘레랑스이니 때려잡아야 한다는 식으로 다른 사람을 공격하기도 좋지요.

그러나 주류심리학-라캉논쟁이나 진화론-창조과학논쟁, 의학-한의학 논쟁과 같이 필연적으로 공존할 수 없는 이론체계가 있습니다. 이런 사실을 무시하고 창조과학자가 자신은 진화론을 인정하니까 진화론자도 창조과학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하더라도 진화론과 창조과학 한쪽은 완전히 죽어서 사라져야 한다는 점은 변하지 않습니다. 진화론자가 창조과학을 공격하는 것이 앵똘레랑스라고 하더라도 이는 합리적이며 정의에 부합하는 것이고 창조과학이 똘레랑스를 내세우며 공존하려고 해도 이를 타파해야 하는 것입니다.

동성애에 대한 논쟁도 이러한 점을 살펴야 합니다. 과연 동성애라는 정체성이 사회를 유지하고 있는 법과 도덕과 같이 공존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 먼저 증명되어야 하며 그 다음에 동성애도 사회의 다양성 유지 차원에서 허용되어야 하고 차별받지 말아야 한다는 도덕적 주장이 증명되는 것이지 동성애라는 정체성을 누군가가 주장한다고 해서 그건 정체성이니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은 옳지 않은 것입니다.
by teferi | 2010/01/05 10:35 | 잡생각 | 트랙백 | 덧글(3)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