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욕구는 충족되어야 합니다.
최근에서야 바람직한 삶이라고 주목받고 있는 삶은 자아를 실현한 삶입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 그것이 지금 성공한 것이고 본받고 싶은 것이 되었지요. 이를 좀 더 넓게 표현하면 욕구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욕구의 실현이 과연 올바를까요? 그렇습니다. 욕구의 실현을 막을 어떠한 올바른 이유도 없기 때문입니다.

개인이 욕구를 실현하는 것을 막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공익에 부합하지 않아서라는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다른 사람의 욕구 실현을 막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하지만 개인의 욕구를 실현하는데 공익에 부합하지 않는 경우가 있을 수 있을까요? 지금까지는 그렇다고 생각해왔지만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어지는 내용
by teferi | 2008/08/25 10:42 | 정치 | 트랙백 | 덧글(0)
다양성의 허용이 아닌 보편성의 확대가 필요합니다.

공산주의가 망한 이후 진보적 논의는 소수자와 다양성에 집중되어 있으며, 그러한 논의가 어느정도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소수자를 옹호하기 위해 개발한 논리는 근본적인 결함이 있으며, 소수자의 포용이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지금의 소수자 옹호논리는 수정되어야 합니다.

현재 소수자논리는 서로 다르다고 인정되기만 하면 자연적으로 존재의 권리가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논리는 서로 다른 사람이 왜 공존해야 하는가에 대한 근거가 없습니다. 누구든지 자연적으로 존재할 권리가 있는데, 지금 존재하는 다수자가 소수자의 자연권을 박탈했다는 음모론에만 의존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음모론은 공산주의의 몰락에서 보듯이, 증명과 반증으로 인한 발전과정을 거치지 못한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이런 논리는 절대로 정론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정치적으로 올바른" 것도 더더욱 아닙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소수자를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냐? 라고 할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소수자가 인정을 받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서로 다르다는 이유로만 인정을 받아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공존할 수 있는 이유는 "같음" 때문이지 "다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담 스미스는 사람이 이기심이 있는 점이 같고 그것이 서로의 이기심을 충족시킬 수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또한 법률은 사람이 같이 꺼려하는 것을 금지하여 서로 공존할 수 있게 합니다. 사람이 다른 점이 많지만, 같은 점이 있고 그것을 서로 인지하여 좋아하는 일을 행하고 싫어하는 일을 금하여 공존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좋아하는 일을 싫어하고 사람이 싫어하는 일을 좋아하는 존재가 있다면 어떻게 공존할 수 있겠습니까? 예를 들어 살아있는 사람을 잡아먹어야만 생존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사람은 누구나 존중받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천부인권사상을 만들었으며, 어떠한 사람사이의 합의라도 인권을 박탈할 수 없도록 하였습니다. 따라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려면 저러한 존재를 완전히 말살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다르다는 것이 자연적 권리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하나의 반례입니다.

실제 문제가 되는 소수자는 그런 경우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동성애자의 경우 개인적 관계는 사회에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될 게 없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이야말로 동성애자가 허용되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같음임을 보여줍니다. 사회에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같은 규칙을 지키기 때문에 동성애자가 허용되는 것이지, 동성애자가 다르다는 이유로 무조건적인 인정을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소수자의 문제는 같음의 확대로 풀어야 합니다. 즉 소수자는 다수자와 공유하는 속성을 통해 인정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소수자를 포함한 새로운 윤리를 만들 때에도 소수자의 무조건적인 인정이 아니라, 다수자와 공유하는 속성에 근거한 윤리적 규정이 필요한 것입니다.

by teferi | 2008/08/21 14:48 | 정치 | 트랙백 | 덧글(2)
출생에 대한 책임이 아니라 행동에 대한 책임이 전라도 지역인에게 요구됩니다.
또 다른 헐...

전라도 태생이라는 것은 개인이 선택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행동은 선택할 수 있습니다.

전라도가 차별을 받았다고 생각하더라도-설령 정말 그렇다 하더라도-전라도를 포함한 조국을 멸망으로 몰고 가는 김대중의 햇볕정책을 지지하는 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습니다.

무언가를 위한다는 의도가 결과와 합치되지 않는다는 것은 공산주의에서 이미 잘 밝혀진 일입니다. 노동자가 비참한 생활을 했다고 해서 공산주의가 노동자 생활의 개선에 어떤 역할을 하였습니까? 전라도사람이기 때문에 김대중의 햇볕정책을 지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노동자계급을 위해 공산주의를 지지한다는 말만큼이나 모순된 것입니다. 둘 다 말은 그럴듯하지만 아무것도 이룬것이 없고 그것을 감추기 위해 난해하고 복잡한 논리를 동원합니다.

정작 그런 맹목적 지지로 인한 투표가 굳이 보수세력의 보복이라는 방법을 통하지 않더라도 전라도 사람에게 충분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은 sprinter님이 수없이 지적한 노무현의 사례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노무현은 전라도 사람은 한나라당을 낙선시키기 위해 자기를 뽑았다고 했는데, 전라도 사람이 그에 어떻게 반박할 수 있었습니까?

대선에서 노무현의 중요한 지지논리중 하나는 "전라도 사람이 전라도를 위하려고 하는 전라도출신후보를 뽑지 않고 일부러 경상도출신 후보를 뽑은 이유는 사심없이 지역주의를 없애기 위함이다." 였습니다. 전라도 사람이 전라도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려고 경상도후보를 뽑았다면 사심없는 지역주의 청산론이 거짓이 되고, 노무현은 당선이 안되었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전라도 사람이 전라도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는 것을 포기했다는 것을 진실로 인정하려고 해도 불평과 불만을 억누를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거짓말은 전라도 사람이 어떻게든 김대중의 정책을 인계받고 김대중의 정책실패를 공격하지 않으려는 후보를 어거지로 대통령으로 만들어내기 위하여 쓴 숱한 속임수중의 하나였지만 자기 꾀에 자기가 걸려든 결과가 돌아온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글을 쓰는 이유는 전라도 사람이 자신의 어리석음으로 인하여 고통받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며 전라도 사람이 어리석음을 깨닫고 행동을 고쳐서 전라도사람이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반공의 영웅인 박정희도 남로당에 가담한 적이 있었으나 그 죄악을 털어버리고 "자유대한의 품에 안겼"으며 공산주의와 대결에서 결정적 공헌을 하였습니다. 전라도 사람 역시 그런 길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전라도사람이 원하는 지역발전과 안보는 햇볕정책지지로는 결코 오지 않습니다. 거짓으로 이룩한 번영은 언젠가 무너지게 마련입니다. 햇볕정책은 그 실패를 감추고 국민을 선동하기 위해 북한의 논리를 동원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북핵보유를 미국핵보유와 비교하며 물타기하기, 북한핵이 대한민국에 핵우산이 된다고 주장하기, 북한의 NLL침범이 정당하다고 주장하기 등등의 주장이 결국 북한의 침략의지를 과소평가하여 북한과 대한민국간에 평화가 존재하고 관계가 개선되었다고 착각하게 만들고 햇볕정책을 지지하게 만들기 위해 이용되고 있으나, 그러한 거짓주장은 결국 들통이 나기 마련입니다.
by teferi | 2008/07/15 00:04 | 트랙백 | 덧글(2)
이제는 촛불시위의 목적을 현실적으로 바꿀 때입니다.
이젠 개신교인들도 널 버렸다 명박아...

이명박에게 남은 최후의 보루마저 사라지게 되어 이명박을 반대하시는 분들이 참으로 시원하시겠군요.
하지만 이명박은 어쨌든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며 이명박에게 화풀이한들 대한민국이 당장에 더 나아지는 것도 아닙니다.
이명박이 잘못했다는 것은 이제 충분히 들었습니다. 이명박이 계속 잘못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겠습니까?

계속 잘못하면, 이명박을 하야시키겠습니까? 이승만의 하야가 4.19라는 사실을 생각해 보십시오. 시위로 인한 하야는 엄청난 정치적 의미를 가지게 되고, 선례가 됩니다.
그 이승만조차 하야시키는 데는 3.15 부정선거, 사사오입 3선개헌등의 명백한 잘못이 필요했습니다.
이명박이 '국민의 뜻을 듣지 않아서' 잘못했다고 한들 그정도의 잘못을 저질렀다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명박의 하야가 선례가 되어, 대단하지 않은 잘못으로 자신이 지지하는 대통령이 하야하는 사태가 벌어지게 되지 않을 거라는 것을 누가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민중의 변덕에서 정책의 연속성을 지키기 위한 대의민주주의는 붕괴할 것입니다.

더군다나, 미국 소고기 수입협상은 대한민국 정부 혼자서 어찌 해 볼 수 있는 사안이 아닌, 미국이라는 상대방이 있는 대외문제입니다. 미국이 소고기 재협상을 해주기 힘들다고 하면 정부도 어찌해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협상의 상대방도 여느 외국이 아닌 미국입니다. 미국과 통상분쟁이 일어나면 대한민국의 경제에는 막대한 악영향이 올 것이고, 미국에도 물론 악영향이 오겠지만 대한민국만큼은 아닐 것입니다. 미국은 갑, 대한민국은 을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미국이 갑이어도 미국 소고기 문제를 너무 양보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협상 타결 전에나 유효한 대책입니다. 지금은 협상이 타결된 상황이고, 대한민국은 일방적으로 재협상을 요구하는 상황입니다. 타결 전과 상황이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이명박이 잘못한 게 아니냐!'고 분개한들, 협상단이 협상을 타결한 사실은 결코 취소할 수 없습니다. 위에 썼듯이 이명박을 하야시키는 것도 하야의 선례를 남긴다는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명박이 떠도는 괴담대로 미국 광우소를 수입해서 한국인이 10년후에는 전부 인간광우병에 걸린다든가, 미국소 부산물로 만든 제품을 사용해도 인간광우병에 걸린다든가, 미국이 한국을 생체실험장으로 삼아 광우소를 수출한다거나 하면 이명박을 하야할 충분할 이유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괴담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이성을 가진 분이라면 충분히 납득할 것이라고 봅니다.

그나마 인정할 수 있는 객관적인 잘못이 필요없이 추가적인 위험을 부담하였다는 것인데, 그 위험이란 건 광우병이 가장 심한 영국에서 1980년대 후반에 발견되 지금까지 183명이 사망한 정도의 위험보다는 훨씬 작은 것입니다. 그게 의미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대통령 하야로 연결하기에는 무리입니다. 불리한 협상을 할 때마다 대통령이 하야해야 하는 건 분명 아니니까 말입니다.

대통령에게 남은 지지세력마저 등을 돌리게 만들었으니 시위대가 이룰 수 있는 것은 거의 다 이룬 셈입니다. 이제는 시위대 스스로 미국소고기 수입으로 발생하는 위험이 미국과 통상분쟁을 일으킬 수 있는 재협상의 위험보다 큰지 이성적으로 판단할 때입니다. 통상분쟁이 뻔히 보이는 재협상만 고집해서 "네가 잘못했으니 네가 재주껏 통상분쟁 일으키지 말고 원상복구해 놔라"고 정부를 궁지에 빠트리는 것은 감정적으로는 시원할 지 모르나 계속해서 대한민국에 살아가야 하는 대한민국의 시민으로서는 현명한 일이 아닌 것입니다.
by teferi | 2008/06/06 23:06 | 정치 | 트랙백 | 덧글(2)
과연 호남은 영남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기는 했을까요?
이제는 말할수 있는건가?
기린아님은 영남이 호남의 반복되는 구애에도 그 '수구적 본성' 내지는 '패권주의'을 버리지 못하고 호남을 거부했다고 글을 쓰신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관점이 호남, 내지는 친 김대중파의 일방적인 관점이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영남이 왜 호남을 거부할까요? 라는 질문은 부산 경남이 왜 호남을 거부하느냐가 되어야 합니다. 대구경북의 전두환은 그 어떤 이유를 내놓아도 결코 용서할 수 없는 호남 제1의 주적이라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부산경남이 대구경북과 같이 영남이라는 한 카테고리로 묶일 이유는 없습니다.

영남은 단일하지 않습니다. 부산경남과 대구경북의 대립한다는 말도 심심치 않게 나왔습니다. 그리고 부산경남이 배출한 정치인 김영삼 역시 박정희와 전두환에게는 정적이었습니다. 부산, 마산에서는 민주항쟁도 일어났지요. 물론 3당합당을 이야기하실 것입니다. 김영삼은 수구로 전향했고 부산경남도 수구로 전향했다고.

과연 그렇습니까?

그럼 김대중을 보지요. 김대중은 얼마나 순수했습니까? 김영삼이 전두환세력과 유신세력과 야합했다면 김대중 역시 유신세력과 야합했습니다. 아닙니까? 김영삼은 전두환에 투항한 거라면 김대중은 유신세력을 무릎꿇린 거라고 하시겠습니까? 그러면 행적을 보지요.

김영삼은 박정희의 안가는 때려부쉈고 하나회를 청산했습니다. 역사바로세우기를 시행하여 전두환, 노태우를 법정에 세웠고 5.18은 민주화투쟁으로 재평가하였습니다. 김대중은 전두환 노태우 사면을 공약으로 제시하여 당선되었고 박정희기념관을 건립하겠다고 했습니다. 대체 누가 군사독재세력에 투항한 겁니까?

김대중이 나쁘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김영삼을 사꾸라, 가짜 민주화운동가라고 생각하는 김대중지지자의 논리대로라면 김대중 역시 사꾸라라는 말을 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기린아님은 김대중을 지지한 과거를 부인할 수 있습니까? 그렇지 못하다면, 부산경남인에게 김영삼을 지지한 과거를 부인하라고 강요할 수 있느냐는 것 역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부산경남인은 비록 IMF로 인해 김영삼이 지금 바보취급을 받아도, 김영삼이 이룩한 민주화 개혁에 대해, 그리고 그를 가능하게한 부산경남인의 민주항쟁과 김영삼지지에 대해 충분히 존중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아직까지 부산경남인에게 앙금으로 남아 있는 것은 71년 선거에 김대중이 이철승에게 쪽지보내서 경선에 승리하였음에도 김영삼은 경선에 승복하고 김대중을 도와주었는데 김대중은 87년에 4자필승론을 내걸며 독자출마해서 김영삼을 낙선시켰다는 것입니다.

이 앙금이 해결되지 않았는데 호남인이 부산경남인에게 "우리는 해줄 거 다 해줬는데 당신이 거부한다" 라고 하는 것은 틀린 말입니다. 이 문제를 도외시한 채 김대중만이 개혁이고 정의라고 하면 그 말을 하는 사람이 누구든 간에 부산경남에서는 통하지 않는 것입니다. 단순히 호남지지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진정 화해의 손길을 내밀겠다면 김대중만이 진짜 개혁이고 진짜 정의라는 관점을 버리고 김영삼을 인정하고 김영삼을 지지한 사람을 존중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봅니다. 물론 이 문제가 해결되고 나서도 경제적 문제에서는 다른 얘기가 나올 수 있지만, 호남이 부산경남을 완전히 배려했는데도 부산경남이 이꼴이라는 식의 논리는 아직 나올 때가 아니라고 봅니다.
by teferi | 2007/11/21 12:35 | 정치 | 트랙백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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