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기독교를 과거에는 믿었으나 현재는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수많은 세월을 버텨온 텍스트인만큼 그 안에는 중요한 철학적 통찰도 들어가 있으며, 이는 하나님이라는 개념이 없이도 적용이 가능한 것입니다.
제가 정의하는 현재주의는 과거의 사건이 현재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현재의 사건이 미래에 영향을 미치지도 않는다는 생각을 말합니다. 과거의 사건이 현재에 영향을 주며 현재의 사건이 미래에 영향을 준다는 인과주의와 대비되는 생각입니다.
성경에는 이런 현재주의에 대해 많은 구절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죄사함과 병고침을 얻은 마태복음 9장 20~22절
20열 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 겉옷 가를 만지니
21이는 제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라
22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가라사대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시로 구원을 받으니라,
예수가 십자가형을 받을 때 양 옆의 죄수중 회개한 한명이 구원받은 루가복음 23장 40~44절
40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가로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
41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42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43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러한 구절은 현재의 믿음으로 과거의 죄를 용서받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기독교에서 강조하는 교리도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즉, 과거의 죄악이라는 과거의 사건에 의한 결과는 현재의 믿음이라는 현재의 사건에 의해 무너지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4장 1~14절 혼인잔치의 비유나 마태복음 24장 36절의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른다는 구절은 미래에 닥칠 그리스도의 재림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으니 항상 준비하고 깨어 있으라고 가르칩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이라는 미래의 사건은 현재의 사건에 의해 예측할 수도 없으며, 미래의 사건으로 인한 미래의 결과는 그 미래사건을 맞을 때의 상태에 달려 있지 현재의 사건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태복음 6장 34절의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하라는 구절은 이러한 생각의 당연한 귀결인 것입니다. 즉, 오늘 내일 일을 염려한다고 하여 내일의 일이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상은 과거 구약의 율법에 비교해서 보면 그 연원을 알 수 있습니다. 구약의 율법은 마치 현대의 법규정과 같습니다.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에는 하여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이런 율법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율법을 어기게 된다면 그에 따른 처벌을 받아야 하는데 이런 처벌은 부작용이 심한 반면 행동을 교정하는 효과는 그리 크지 않습니다. 또한 지키지 말아야 할 것을 열거하고 있기 때문에 열거하지 않은 것은 해도 된다고 해석하게 되며, 율법의 정신에 따른 융통적인 적용을 할 수 없고 문자 그대로 지켜져야 한다고 해석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가르침에 들어있는 현재주의는 종교적으로는 이런 율법의 부작용을 상당부분 없앴습니다. 일단 과거의 율법을 어긴 사건이 현재에 처벌받는 일을 없애서 누구나 쉽게 회개하고 개종하게 하였습니다. 또한 율법의 정신을 담은 핵심적인 사상을 강조함으로서 회개한 사람이 속일 수 없는 절대자의 기준에 비추어 율법의 정신대로 행동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현재의 회개만으로 미래에 구원받는다는 확신을 얻고 미래에 나태해지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 언젠가는 재림한다고 경고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은 구원을 얻기 위해 계속적으로 현재의 행동을 조정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리고 그런 현재의 연속이 바로 영원이 되는 것입니다. 즉 종교적 가르침을 동원하여 사람의 현재 행동을 율법적 방법보다 더 효과적으로 영원하게 조정한 것입니다.
현재주의에는 중요한 통찰이 들어가 있습니다. 사람이 통제할 수 있고 변화할 수 있는 것은 현재 뿐이라는 것입니다. 과거는 이미 일어난 일에 불과하며, 미래는 그 순간이 와야 아는 것입니다. 과거에 어떤 행동을 했든 간에 현재 올바른 행동을 하는 것은 언제나 필요합니다. 과거는 현재를 예측하기 위한 그림자에 불과하며, 종교적 절대자의 관점을 도입한다면 현재의 모든 정보를 안다면 과거의 정보에 의존할 필요가 전혀 없어지는 것입니다. 과거는 과거에 행했던 현재행동에 불과하며 미래는 그때가서 행할 현재행동에 불과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