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분이 중요하다는 것의 의미를 보충해서 설명하겠습니다.
teferi씨께 답하다 #1 사례검증편
 
네이버 어학사전에서 찾은 명분의 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명분 [名分]

[명사]
1 각각의 명의(名義)나 신분에 따라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 군신, 부자, 부부 등 구별된 사이에 서로가 지켜야 할 도덕상의 일을 이른다.
2 일을 꾀하는 데에 있어 내세우는 구실이나 이유 따위. ≒이름

국제관계에 있어서 명분이라고 함은 2번의 뜻이 되겠지요. 즉 어떤 일을 행할 때 내세우는 이유가 바로 명분이 될 것입니다. 반면에 명분과 대비되어 사용되는 단어인 실리의 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실리 [實利]
[명사]실제로 얻는 이익. 

명분과 실리가 대비된다는 것은 곧 어떤 일을 꾀할 때 내세우는 이유와 실제로 얻는 이익은 다르다는 것을 의미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정말로 그런 것일까요.

sonnet님이 들어주신 걸프전의 예를 보지요. 걸프전은 전쟁의 목적을 "쿠웨이트에서 이라크군을 몰아낸다"라는 것으로 좁고 명확하게 정의해서 짧은 시간 안에 끝낼 수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즉 걸프전에서의 실리는 쿠웨이트에서 이라크군의 철수가 될 것입니다. 그러면 명분은 무엇일까요? 침략행위의 중지이니 역시 이라크군의 철수가 되겠지요. 즉 명분과 실리가 일치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미국은 이라크에 침략행위를 중지하면, 이라크가 원하는 뭔가를 들어주겠다고 제안할 수 있지요. 물론, 침략행위는 그 자체가 잘못된 것인 만큼 침략행위에 대응하는 군사행동을 하는 것이 협상의 기본 시작점이 될 것이고, 보통 미국의 제안은 침략행위를 중지하면 군사행동을 하지 않겠다는 식으로 변화되지 않은 조건에서도 아무것도 잃지 않으면서, 변화된 조건에서는 양보행위가 되는 제안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제안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서 철수한다면 미국도 좋고 이라크도 좋은 결과가 도출됩니다. 또한 이라크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미국은 이라크군을 공격하게 될 것인데, 걸프전에서는 미국이 압도적으로 이겼고 이길 가능성도 높았지만 그렇지 않는다고 해도 여전히 공격은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미국은 이라크군의 철수를 진심으로 원하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공격이 정당화되는 겁니다. 미국이 고통받을지라도 이라크도 고통받기 때문에, 이라크의 선택을 나중에는 윈-윈쪽으로 돌려놓을 수 있게 되는 것이죠.

하지만 지금의 이라크전은 무엇이 문제인 것일까요? 미국은 대량살상무기를 이라크를 공격해야 하는 이유로 내세웠습니다. 하지만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사찰을 후세인이 수용할 뜻을 밝혔는데도 미국은 이라크를 공격했지요. 그리고 미국은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없다는 것을 알고도 계속해서 주둔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라크전의 이유는 점점 바뀌어 갔지요. 이런 행동으로 인해 미국의 행동은 숱한 억측과 오해를 낳았습니다. 군산복합체의 음모, 이스라엘의 음모, 석유전쟁 음모등등 많은 오해를 낳았고, 이라크에 핵이 있었으면 공격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에 핵을 가져야 한다는 프로파간다를 유효하게 만들었고 실제 저러한 논리에 기초하여 정책을 수행하는 나라도 생기게 되었습니다. 또한 미군과 미국 국민은 점점 바뀌어가는 전쟁의 명분때문에 왜 전쟁을 해야 하는지조차 모르게 되었지요. sonnet님이 인용하신 글에서도 불확실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끝없는 희생을 하는 전쟁은 지지받을 수 없다고 하셨는데, 이러한 일이 일어나게 된 원인 자체가 명분과 실리의 불일치 때문인 것입니다. 국민들이 명분과 실리를 자발적으로 인식하고, 실리를 모두 알면서도 남에게는 명분을 내세운다면 목표의 불명확성이 제거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국민들이 이런 유기체로 기능하는 것은 현대민주국가에서는 불가능한 얘기이고, 과거 국정이 소수에 의해 움직였고 국민의 동의를 필요로 하지 않았던 왕정국가, 과두제국가에서나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또한 명분과 실리의 불일치는 다른 국가에서 올바르지 않은 선택을 하게 합니다. 미국이 내세운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명분을 지켰더라면 다른 국가가 미국은 정말로 대량살상무기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대량살상무기를 폐기하고 감시받으면 보상을 받지만, 그렇지 않으면 전쟁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미국이 스스로 내세운 명분을 지키지 않았기에, 다른 나라는 미국의 명분을 신뢰하지 않게 되고, 미국의 입장에서 올바르지 못한 행동에 들어가게 되는 결과가 초래됩니다.

즉 명분과 실리가 일치할 때 대내적으로도 대외적으로도 올바른 결정을 내리게 되고, 명분과 실리가 일치하지 않으면 올바르지 못한 결정을 내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그대로 내세우는 것이 불안하다고 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도덕적 비난을 받을 것이라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도덕적인 비난을 받는 것은 그 수단일 뿐이고, 수단으로 이루고자 하는 최종적인 목적은 아무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서 전쟁을 하는 것은 비난을 받을 수 있으나 그 전쟁의 목적이 되는 국가안보는 비난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모든 국가와 모든 사람이 갖추고 있는 공통적인 욕구이기 때문입니다. 수단이 되어야 하는 목표와 궁극적인 목표를 혼동할 때만 도덕적 비난을 받는 것입니다.

또한 아담 스미스의 발견과 황금률의 존재로 인해서 그러한 욕구를 드러내고 충족하는 것이 전혀 다른 사람의 욕구를 방해하지 않고, 오히려 다른 사람의 욕구역시 충족할 수 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개인은 국가의 틀 안에서 다른 사람에게 공격하지 않는 대신, 다른 사람에게 공격받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을 공격하는 것은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수단이기 때문에, 궁극적인 목적이 충족된다면 포기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안전을 보장받는 것은 궁극적인 목표인 반면에 내가 다른 사람을 공격하는 것은 돈을 가지거나, 원한을 풀거나, 자신을 방어하거나 하는 목적을 위한 수단이며, 이러한 목적은 다른 사람을 공격하는 게 아닌 다른 방법으로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개인은 이러한 국가라는 틀 안에서 서로와 계약으로 win-win하는 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이러한 관계를 규정한 것이 법이지만 법에 규정되어 있지 못한 것을 규율하는 것이 윤리이며 도덕인 것입니다.

따라서 궁극적인 목적이 되는 명분이기만 한다면 그것을 드러내놓는 것이 아무런 도덕적 비난을 받지 않으며, 그런 명분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도 반드시 전쟁만 있는 것이 아니며 항상 win-win하는 선택이 존재하게 됩니다. 자신이 포기한 수단이 상대방에게는 궁극적인 목적이 되고, 상대방이 포기한 수단이 자신에게는 궁극적인 목적이 되는 일이 항상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상대방의 의도를 정확히 알게 되는 것이 오히려 win-win의 선택으로 유도할 수 있으며, 상대방의 의도를 정확히 모르게 되면 lose-lose의 결과가 나오기 쉽습니다. 상대방이 원하는 궁극적인 목적을 알면 자신이 포기할 수 있는 수단을 알 수 있고, 자신이 원하는 궁극적인 목적과 상대방이 포기할 수 있는 수단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상대방의 의도를 모르게 된다면 상대방의 의도를 잘못 추측하게 되고, 잘못된 판단을 하게 되며, 상대방이 제시한 조건에 대한 신뢰가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by teferi | 2007/01/25 15:49 | 트랙백(1)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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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하이얼레인의 얼음집'▽'♡ at 2007/01/25 16:43

제목 : 명분이란 말이 싫어요.
teferi씨께 답하다 #1 사례검증편 명분이 중요하다는 것의 의미를 보충해서 설명하겠습니다. 에 대한 트랙백.(상호 트랙백 오면 위 리스트는 삭제되며, 가급적 상호 트랙백 부탁드립니다^^) 뭐 간단한 이야기지만. 올바른 판단은 올바른 근거들이 논리적으로 결합될 때에 가장 나올 확률이 높습니다. 대부분의 propaganda는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일부의 근거들을 생략하고, 일부의 근거가 잘 보이도록 압축해서 사용되었......more

Commented by 하이얼레인 at 2007/01/25 16:44
트랙백 신고합니다:) 시간내 설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만 이에 대한 다음 발언은 조금 시간을 두고 흑흑... 죄송합니다OTL
Commented by young026 at 2007/01/26 21:43
예. 그런데 미국의 베트남 개입은 어떤 명분이 있죠? 만일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게 된다면 그 경우에는요?
Commented by teferi at 2007/03/07 13:49
베트남 개입이 만약에 명분이 있었다면 - 베트남이 미국인을 학살했다거나 등등 - 성공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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